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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두와 느림보

by vovona 2015. 12. 24.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에서는 미국의 각 주요 기관을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에 비유하여 각각의 변화의 속도를 이야기 한다.


시속 100마일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기관이며, 기업이나 사업체가 여기에 해당된다. 사회 다른 부문의 변혁을 주도한다. 기업은 스스로 빠르게 움직이며, 공급 업체와 유통 업체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 자신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변화할 것을 강요한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그들의 사명, 기능, 자산, 상품, 규모, 기술, 노동력의 특성, 고객 관계, 내부 문화와 다른 모든 것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속도를 높인다. 물론 각 영역은 각기 다른 속도로 변화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기술은 경영자와 직원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쏜살같이 질주한다. 금융 부문 역시 새로운 기술은 물론 새로운 스캔들, 새로운 규제, 다각화 되는 시장, 재무 상태 변동에 반응하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회계나 다른 시스템도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시속 90마일

친기업과 반기업 연합, 전문가 집단, 스포츠 연맹, 가톨릭 단체와 불교 승려 집단, 플라스틱 제조협회, 반플라스틱 운동가들, 신앙 집단, 세금을 혐오하는 사람들의 모임, 고래 사랑 모임 등 집단적으로 견해를 형성하는 시민단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시민단체는 격렬하게 변하는 수천개의 NGO(Non-governmental Grassroots Organizations, 비정부기구)들로 구성되어 급성장하고 있는 과보호 부문이다.
이들 대부분의 집단은 환경, 정부 규제, 국방비 지출, 지역지구 계획, 질병 연구 기금, 식품 안전, 인권, 기타 수많은 이유를 들어 변화를 요구한다. 반면 확고하게 변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며 그것을 방지하거나 최소한 속도를 늦추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이들도 있다. 예컨데 미국의 환경운동가들은 법정소송, 피켓 시위, 다른 수단들을 사용하여 핵 발전소 건립을 저지한다. 공사를 지연시키고 발전소의 잠재적인 이익이 제로가 되는 수준까지 법정 비용을 증가시킨다. 핵 반대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이건 아니건, 이들은 시간을 경제적인 무기로 사용한다.
NGO가 주도하는 운동들은 작고 빠르고 탄력적인 단위로 구성되며, 네트워크로 조직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거대 기업과 정부기관을 능가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 사회의 다른 어떤 주요 조직들도 비즈니스 세계와 시민단체 두 부문의 변화 속도에 미치지 못한다.

시속 60마일

이들은 미국의 가족이다. 수천 년 동안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형적인 가족 형태는 몇 세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었으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인해 핵가족이 우세해졌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이 형태가 지속적으로 우세할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오늘날 미국에서 핵가족의 의미에 적합한 가정은 25퍼센트 미만으로 편모나 편부 가정, 결혼하지 않은 커플, 한 번이나 두 번 또는 그보다 많이 재혼하여 이전의 혼인 관계에서 생겨난 아이들을 양육하는 가정, 노년 결혼, 최근에는 합법적인 동성 간의 결합이나 결혼을 통한 가정이 생겨나고 있다. 사회 조직 중에서 가장 늦게 변화하는 유형에 속했던 가족체계가, 불과 수십 년만에 변형되고 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다른 급속한 변화가 진행 중인데, 수천 년간 농업사회가 이어지는 동안 가족이 담당했던 자원 생산, 교육 기능, 건강관리 등은 산업화로 인해 공장으로, 학교로, 병원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최근에는 파트타임이나 풀타임으로 집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가 수천만 명을 넘어서게 되면서 쇼핑, 투자, 주식거래와 여러 기능들을 집안에서 해결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교육 또는 그와 유사한 기능이 부분적으로는 집으로 옮겨질 것이며 인터넷과 이동통신의 발달로 집 이외에 다른 장소로 이동될 가능성도 높다. 가족 형태, 이혼율, 성행위, 세대 간 관계, 데이트 패턴, 자녀 양육 등 가정 생활의 모습들이 모두 급속도로 달라지고 있다.

시속 30마일

노동조합에 해당한다.
미국의 노동 형태는 지난 반세기 동안 육체노동에서 정신노동으로, 대체 가능한 기술에서 대체 불가능한 기술로, 맹목적인 반복 업무에서 혁신적인 업무로 변하고 있다. 우리는 비행기, 차, 호텔, 레스토랑 등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으며, 몇년간 한 조직에서 일하는 대신 프로젝트 단위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직원이라기보다 계약을 통해 일하는 프리에이전트이다.
기업은 100마일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미국의 노동조합은 호박에 박힌 화석처럼 1930년대 대량생산 시대의 조직, 방법, 모델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1955년 미국의 노동조합은 전체 노동력의 33퍼센트를 대변했으나 오늘날에는 12퍼센트의 노동자를 대변할 뿐이며 시속 90마일 NGO의 확산은 주로 제3물결에 있는 미국의 생활양식과 이익이 급속하게 탈대중화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같은 맥락에서 노동조합의 쇠퇴는 제2물결인 대중사회의 쇠퇴를 반영한다.

25마일

수십 년간 각종 비파으로 부터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 변화를 지체시키는 데 능력을 발휘해 온 피라미드식 정부 관료조직과 규제 기관이 이에 해당한다. 정치인들은 아무리 진부하고 무익한 것이라 해도 새로운 관료제를 수립하기보다 구관료제를 타파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지만 스스로 천천히 변화할 뿐 아니라 빠르게 바뀌는 시장 조건에 반응하는 기업의 속도마저 떨어뜨린다. 정부의 의사결정은 너무나 지지부진하게 이루어져 공항 활주로 건설 승인을 받기까지 10년 이상 걸리고, 도로 건설 프로젝트 하나를 승인 받는데도 7년 이상이 걸린다.

10마일

뒤 따라오는 차까지 속도를 낼 수 없게 만드는 이 차량은 미국의 학교이다. 이 부서진 차를 유지하기 위해 해마다 4,000억 달러가 소요된다.
미국의 학교들은 대량생산에 맞게 디자인되어 공장처럼 가동되고, 관료적으로 관리되며, 강력한 교원노조와 교사들의 투표권에 의지하는 정치인들로부터 보호받는다. 기업들이 속도 경쟁을 벌이며 변화에 매진하는 동안 공교육 체제는 독점의 특헤를 누리고 여전히 20세기 초 산업시대에 걸맞는 공장식 스타일을 유지하며 보호받고 있다.
10마일로 기어가는 교육체제가 100마일로 달리는 기업에 취업하려는 학생들을 준비시킬 수 있을까?

5마일

세계 경제애 영향을 미치는 역기능적인 조직들이 국가차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나라는 유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정부간국제기구(IGO) 등과 같은 세계적인 관리기구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다. WTO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를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조직은 반세기 전인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구성되었으며, 이들의 관료구조와 활동은 예전 그대로이다.

3마일

이보다 더 느리게 변화하는 곳은 경제 부국의 정치조직이다. 의회와 백악관에서 정당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정치조직들은 느긋한 논쟁과 관료적인 나태함에나 걸맞는 체제에서 벗어나 빠른 반응을 원하는 수많은 단체들의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의 정치 시스템은 지식 기반 경제의 엄청난 속도와 고도의 복잡성의 다룰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정당과 선거는 왔다가 사라질 수 있고 기금 모금과 선거운동의 새로운 방법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거의 즉각적으로 새로운 정치 구성 요소를 형성할 수 있는 미국에서조차 정치의 구조적인 변화는 인식하기 어려울 만큼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


1마일

느림보 중에서도 가장 느리게 변화하는 마지막 주자는 법이다. 법에는 두 부문이 있는데 하나는 법원, 변호사협회, 법과대학원, 법률회사 등을 포함하는 기관들이며 다른 하나는 이 기관들이 해석하고 수호하는 실질적인 법 그 자체이다.
미국의 법률회사들은 합병, 광고, 지적재산권에 관련한 법안 등 새로운 전문 분야를 개발하고,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세계화를 추진하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반면 법원과 법과대학원은 기본적으로 변함이 없는 상태며, 시스템이 작동하는 속도 역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서 중요한 사건들은 몇 년째 법원에 계류되곤 한다. 그 예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이 제기되었을 때, 미국 정부가 기업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추측이 난무했으나 실제로는 재판이 끝나기까지 몇 년의 세월이 걸리고, 그때쯤이면 기술적인 진보로 인해 소송의 쟁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흔히들 '법은 살아 있다'고 말하지만 정말 간신히 살아 있을 뿐이다.
물론 의회가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고 법원은 기존의 법규에 새로운 해석을 추가하면서 법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나, 이러한 추가 사항들은 전체 법규에 있어 극미하거나 사소한 비율에 그친다. 전체 시스템을 개편하거나 체계적인 재정비를 하지 않은 채 순전히 법의 양과 부피만 팽창해간다. 물론 법은 천천히 변해야 한다. 그래야 지나치게 빠른 사회의 경제적인 변화에 제동을 걸어 사회나 경제에 필요한 예측 가능성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천천히 변해야 할까?
세계에서 제일 빠르게 변화한다는 전기통신산업은 1996년까지 1934년에 만들어진 법에 의해 규제를 받았고, 미국의 주식 발행과 다른 유가증권 발해에 대한 기본 규제들은 1933년 법으로 제정된 것이며, 오늘날 약 2억 5,000만 개의 계좌와 약 7조 달러의 자산을 주무르는 8,300개 이상의 뮤추얼 펀드를 관리하는 법은 여전히 1940년에 제정된 것이다.
진보된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저작권, 특허권, 사생활 보호와 같은 분야의 주요 법들도 한심하게 뒤쳐져있으며, 그야말로 지식 경제는 이런 법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법률에도 불구하고 생겨나고 있다. 이는 안정성도 부동성도 아니다. 법조계 사람들은 일하는 방식을 바꿔가고 있지만 법 자체는 거의 변화가 없다.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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